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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감상평을 한마디로 줄여보자면 '작가님께서 던지신 관점의 전환, 미묘하고 신기한 경험' 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통 만화는 주인공 입장에서 적들과 싸우는 시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데, 이번 화는 도대체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적인지 모를 미묘한 시점 전환을 통해 오묘한 감정을 느낀 한 회였다.
우리가 보통 RPG게임을 하거나 온라인게임을 하면 캐릭터를 선택하고 레벨업을 하게 된다.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점점 더 강한 몬스터들도 잡고 결국 보스도 잡게 되는데, 언젠가 관점을 바꿔서 이 몬스터들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이 얼마나 마귀같은 놈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오늘 바로 그 관점의 전환을 경험시켜 주셨다.
추이를 상대하는 산군과 무커는 그야말로 마귀같은 범들이었다. 서슬퍼런 안광을 내뿜으면서 추이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더니 기어코 목을 뽑아버리고야 말았다. 추이가 누구인가? 귀신굴에서 살아돌아오고 항마전에 참전해서 아린의 결계까지 뚫은 인물이다. 전투기계인데 머리까지 비상한 그야말로 지덕체를 갖춘 완벽한 캐릭터인데, 그런 추이가 한 팔이 잘린 채 두 범에게 물어 뜯기고, 눈 앞에서 목이 뽑히는 장면은 나에게도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딱 이런 느낌이었다. 와 저 두 놈 개쩌는 빌런들이네... 저걸 누가 잡냐??
통상 만화에서는 늘 정의로운 편과 악의 편이 나뉜다. 스토리 진행 상 아무리 강한 인물이라고 해도 정의의 편일 때는 왠지 악당의 계략에 빠져 당하거나 더더욱 엄청나게 강한 악당이 나타나 당할 거 같은 불안함이 있기 마련인데, 반대로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악당의 시각으로 등장하니까 이렇게나 강하고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나, 저놈들을 어떻게 이기나 하는 신선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떡밥 해소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작가님께서 진행을 빨리 하고싶으신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하나하나 알아보자.
1. 추이의 죽음 떡밥 총정리.
추이가 죽었는데 목 틈에서 초록색 액체가 소량 흘러나온다. 재생벌레의 흔적인지, 아니면 미약하게나마 재생벌레가 숨이 붙어있는 것인지 떡밥인것 같다. 재생벌레가 미호의 여우구슬에 몸통이 반쪽이 나버렸는데, 이전에 추이가 홧김에 먹었던 녹색 단약의 효과로 죽지 않고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재생벌레의 숨이 붙어있었다면, 추이의 목이 어떻게 다시 붙을 수 있었는지 설명이 가능해진다.
뒷받침하는 단서는 있다. 그것은 바로 황요의 증언인데, 황요는 추이의 목이 잘리는 순간을 모두 지켜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황요가 녹치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왜 흰눈썹에게 추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숨겼냐고 녹치가 묻자, 황요는 '흰눈썹이 재생벌레를 꺼내려고 할까봐 그랬다'고 한다. 즉, 황요는 추이의 재생벌레가 몸 속에 온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다.
2. 흰 산의 얼음굴
무커는 자신의 잘린 손을 물고 흰 산으로 돌아가면서 '흰 산의 얼음굴에 넣어놨다가 고마님께 나중에 붙여달라고 해야지'라고 말한다. 무커가 말한 흰 산의 얼음굴은 예전에 아린이 '울라와 비라'를 보관했던 석빙고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흰 산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 큰 힌트인데, 흰눈썹은 산군이 쳐들어오자 녹치를 시켜 흰 산의 영역 안에 있던 석빙고에서 비라의 육신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즉, 흰 산의 얼음굴은 이령의 얼음굴과는 별개의 곳이고 아린이나 이령이나 자신과 명을 나누는 계약을 하기 위해 시체들을 얼음굴에 보관해 왔다는 정황이 엿보인다.
3. 무커에게 잠식되어 있는 창귀
무커는 자신이 있는 곳이 흰 산의 영역이 아닌데도 숨이 좀 가쁠 뿐 버틸만 하다고 한다. 도대체 무커가 흰 산 밖임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창귀 한 마리가 몸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커는 창귀 3마리에 지배당해 정신을 잃은 후 산군과 싸우게 됐지만, 산군이 2마리를 제거해준 덕에 제정신을 차린 적이 있다. 나머지 한마리는 무커가 스스로 떼어버리려다가 왠지 그냥 놔둔 적이 있는데, 그 창귀의 힘 덕분에 흰 산을 벗어나서도 목숨을 위협받지 않았던 것이다.
자세한 설정은 작가님이 흰눈썹과 효의 대화를 통해서 이미 설명해준 적이 있다. 저 당시에는 산군과 흰눈썹이 대치하는 이 긴장되는 순간에 굳이 흰눈썹과 효가 저런 대화를 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는데, 다 오늘을 위한 설정을 깔아둔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소름돋는 부분이다.
4. 흰 산의 지기 - 백두대간 떡밥
무커에 따르면 아린은 흰 산과 연결된 큰 산줄기를 따라서 범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는데, 첫째는 아린 또한 흰 산의 범들과 마찬가지로 흰 산이 지기가 미치는 지역 외에는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 둘째는 흰 산의 지기가 산 주변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고 산의 큰 줄기를 타고 따라 흐른다는 것이다. 즉, 작가님께서 땅의 기운(지기)에 대해 차용하신 설정은 '풍수지리'에 근거한 걸로 볼 수 있는데, 풍수지리에 따르면 지기(地氣)란 만물이 생겨나는 생기이다. 지기의 근원은 티벳의 곤륜산으로 그 맥이 동쪽으로 이어져 백두산에 이르는데, 백두산에서 뻗은 줄기(백두대간)에 까지 그 지기가 흐른다는 내용이다.
아린이 타고 다녔다는 큰 산줄기를 생각해보자. 빼박 백두대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1정간, 1대간, 12정맥은 지리산까지 이어져 있으며, 무커는 흰 산 어딘가에 이 백두대간과 기운이 이어져있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흰 산의 기가 강했던 시절에는 아린이나 흰 산의 범들도 백두대간을 통해 한반도 곳곳을 다닐 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울라도 그 길을 나섰다가 지기가 끊겨 죽게 됐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압카와 이령이 왜 흰 산을 차지하려고 하는지도 명확해 진다. 바로 풍수적으로 완벽한 지기가 흐르고 천/지가 조화로운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며, 흰 산을 차지하지 않는 한 한반도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상황이 이해가 간다. 또한 풍수지리가 세계관의 요소로 편입된다면, 서왕모가 산다는 곤륜산 또한 작품에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왜냐하면 모든 지기의 시작은 곤륜에서 뻗쳐 백두산에 맺혀 동쪽 땅으로 퍼진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각 국의 건국 신화에서부터 실제 역사, 지리적 고증, 거기다 풍수지리 사상까지 완벽히 녹아넣은 세계관이라...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고 감히 진정한 동양 판타지의 걸작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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