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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형님 3부 60화 - 인정할 수 없는 전쟁 리뷰

호랭박사Holang 2023. 7. 7. 23:12

지난 화에서 이령이 정신지배에 걸린 흥개의 부족들을 이끌고 완달성으로 돌아오면서 끝이 났었죠. 이령이 다시 흰 산의 주인 자리에 오르면서 안정을 되찾고 제대로 왕 노릇을 하나 싶었더니, 돌아온 이령은 신하들에게조차 왕의 정통성을 부정당했다는 열등감과 불안에 사로잡힌 개차반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령이 돌아오자 궁은 일대 혼란에 빠지는데요, 완달이 흰 산의 묘역으로 급히 이동한 것도 모르는 신하가 태반인 상태에서, 무덤에 묻혀 폐위되었던 세자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상황 파악이 어려울만도 합니다. 이령은 자기를 따르던 일부 신하들을 앞세워 궁을 장악하려 한 걸로 보이는데, 완달이 아직 건재한 것으로 알고 있는 상당 수 부하들이 이를 거부한 것 같습니다.

완달과 대결할 당시,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완달 편에 섰었던 신하들이 대다수였는데요. 이령이 백액을 하고 궁으로 돌아왔는데도 이를 인정치 않자, 모조리 부역자(附逆者)로 몰아세우며 마구잡이로 처형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빡쳐서 죽이고 보는 것도 있었겠지만,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배신하는 놈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피를 보여주고 복종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죠.

이령 입장에서도 나름 충격이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자기가 차기 흰 산의 주인으로서 무려 3년 동안이나 완달성에서 왕 노릇을 하며 신하들을 다스렸고, 어서 용상(龍床)에 오르라는 권유도 뿌리치고 나름 성실하게 제도 지냈었는데요. 그런데 완달이 무덤에서 돌아오자마자 거짓말처럼 신하들이 전부 돌아섰으니, 부하들이 속으로는 자기를 내켜하지 않고 내심 왕의 자격을 부정했던 것인가 의심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한편 이령은 자신이 대렴당해서 묻혀있을 때 흰 산이 곤륜과 치른 전쟁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요.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가 전쟁이 있었던 사실을 듣게 됩니다. ‘어르신(완달)께서 곤륜과의 전쟁으로 편찮으셔서 아직 내전에 머무시는 것으로 아는 자들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곤 깜짝 놀라는데, 자기가 묻혀있던 기간이 고작 얼마나 된다고 그 사이에 곤륜과 전쟁을 치르고 승부까지 봤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려웠을 듯 합니다.

이령은 전쟁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재상(宰相)을 따로 부르는데요, 재상은 무덤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역자를 처단한답시고 처형식부터 벌이는 이령에게 분노합니다. 그는 이령을 반역자로 취급하죠. 그가 모셨던 완달이 분명 이령을 차기 주인 자리에서 박탈했고 압카를 후계자로 새로 세웠는데, 완달은 사라지고 백액을 한 이령이 나타났으니 그가 어떤 사악한 술수를 써서 흰 산의 주인 자리를 다시 훔쳤다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곤륜도 당황스러운데 재상의 입에서 ‘천제’라는 단어까지 튀어나오자 이령은 더욱 당황합니다. 그냥 곤륜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데, 세상의 지배자이자 곤륜의 최고 존재인 천제가 흰 산까지 강림해서 완달과 전쟁을 했다는 건 진짜 터무니없이 말도 안되는 일이었죠. 이령이 생각하기에는 그런 전쟁이 벌어질만한 이유나 명분도 없었고, 아무리 동맹들이 있었다고 하나 흰 산에 9할의 힘을 환원한 완달이 거의 홀몸으로 나서서 모든 적을 물리쳤다는 것도 말이 안됐고, 무엇보다 그러한 대전쟁을 치른 것 치고는 성이 부서진 곳 없이 멀쩡했습니다.

더군다나 이령은 자신이 흰 산의 힘을 받아서 너무 강해진 나머지 완달을 이겼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만약 완달이 천제를 포함한 곤륜 전체와 싸우고 부상당한 상태였다면 이 또한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흰 산의 힘도 쓰지 못하는 아바이가 흰 산의 경계 바깥까지 나가서 곤륜 전체와 천제를 물리쳤다? 이령 수준에서 이게 상상이나 되는 강함일까요?

만약 이게 사실이었다면 완달은 흰 산의 묘역에서 자기를 못 죽인게 아니라 안 죽인 것이 되죠. 이령에게 완달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 될 거구요. 믿고싶지 않았겠지만, 완달의 한 팔이 잘려있던 사실과 온 몸에 빼곡히 남은 상흔()들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듯 합니다.

이에 이령은 재상에게 ‘니가 직접 아바이와 천제가 싸우는 것을 봤냐’며 유치하게 물어보는데요. 재상은 삽풍주의 보호막으로 둘러쌓인 성에서 계속 피난을 다녔을테니 전쟁을 목격하진 못했습니다. 완달이 저 멀리 흰 산의 서쪽 영역 밖에까지 나가서 싸웠으니까요. 물론 완달성도 토백에 의해 성벽과 곳곳이 부서지긴 했지만, 모란의 정수주가 이미 깔끔하게 성을 수리했기에 수성()의 흔적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령에게 전쟁의 흔적을 증명하기가 어려웠죠.

이령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재상은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동맹들에게 물어보라’며 입을 닫는데요. 이령은 사실 확인을 위해 즉시 동맹의 볼모들을 불러들입니다. 서쪽 동맹인 시라무렌을 비롯해 북서쪽, 북쪽 동맹의 볼모들은 백액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령을 보고는 설설 기면서 충성부터 맹세하는데요, 이령은 이 놈들이야말로 전쟁이 거짓이라는 진실을 말 할 거라고 기대한 듯 합니다. 하지만 서쪽 동맹의 볼모인 시라무렌이 예상 밖의 말을 전하죠.

‘완달님의 선전포고 때 저희 일족도 명을 받고 참전했습니다’

이령은 동맹의 볼모 놈들까지 자기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자 버럭 화를 냅니다. ‘선전포고라니 어디서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냐’ ‘천제가 뭔지나 알고 떠드는게야’라며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모습에, 시라무렌은 자기 대답에서 잘못된 곳이 어딘지 의아해하죠. 이령과 시라무렌이 한 때 이런 관계이기도 했었다는게 재밌네요.

이령과 시라무렌은 작중 시점으로부터 약 650년 후에 흰 산의 서쪽 강가에서 피터지게 싸우게 되는데요, 이 싸움에서 이령은 시라무렌에게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현 시점의 이령이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일이죠. 그런데 이 둘이 라이벌이 되어 싸운게 이 때가 처음이 아니라, 무려 수 백년에 걸친 앙숙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과 땅 차이였던 둘이 대체 무슨 사건을 계기로 앙숙이 된 걸까요? 아마도 라오허가 죽게 된 사건과 연관이 있을 듯 한데, 이 내용이 3부에서 다뤄지기에는 시라무렌이 아직 어리고 약한 것 같기도 해서 일단 지켜봐야 될 듯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시라무렌은 이령이 곤륜과의 전쟁 얘기에 대해 화를 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령은 이 전쟁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고 신하들, 병사들, 볼모들까지 한 통속이 되어 전대 왕이었던 완달을 숭배하려고 거짓을 지어낸 거라고 믿고 싶어했죠. 한 마디로 자기가 완달에 비해서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한 왕으로 취급당할까봐 열등감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이령은 흰 산의 힘을 곧이 받는다고 해도, 감히 천제와 전면전을 생각할만큼 담이 큰 인물은 아니었죠.

그 동안 천제에 대해 우습게 여기던 말들도 전부 허세였던 것 같습니다. 3부 시작할 때 천제의 힘을 받아 소속산을 지키던 석상들에게 ‘이 따위 낡은 힘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라고 했었고, 양백과 싸우면서는 ‘내 자리릍 탐한다면 아바이가 아니라 설령 천제라 해도 내가 처단할 것이다’라고 했거든요. 천제를 본 적도 없는 이령이 왜 저렇게 자신만만한가 했더니, 그저 입을 털었을 뿐이네요.

이령은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곤륜과의 전쟁 까지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천제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기세였죠. ’앞으로 천제가 직접 왔다고 날조하는 놈들은 그 즉시 죽일 것이다‘라고 선포하는데요, 유일한 목격자인 동맹의 볼모들부터 입막음 하려 합니다. 진실이야 어쨌든, 빡세게 심문하고 조지면서 ’천제가 왔었다‘는 말 자체를 못 하게끔 하려는 것이었죠.

이에 대해 북서쪽 동맹의 볼모인 듯 한 갈기머리가 반항을 합니다. ’우리 일족은 멸족의 각오로 흰 산을 의해 천제에 맞서 싸웠는데 대가가 이것이냐‘고 반발하자, 이령은 그 즉시 흰 산의 힘을 발동해 볼모를 위 아래로 찢어버리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령이 복제를 만들고 나서부터 판단도 흐리고 단세포가 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3년 전 이령이 자기 입으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동맹은 우리가 해야 할 전쟁을 대신 치르는 존재들이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동맹이고 뭐고 지 감정 가는데로 마구 행동하는 것을 보니 이 때부터 이미 폐급이 되었구나 싶습니다.

게다가 고작 볼모를 죽이는 일에 흰 산의 힘을 남발하는 이령을 보고 재상, 병사들, 볼모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하죠. 스스로의 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텐데 굳이 흰 산의 힘을 쓴 이유는 역시나 열등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흰 산의 힘을 쓰는거 똑똑히 봤지? 아바이에게 그랬던 것 처럼 이제 나에게 개기지 말고 복종해’라는 메세지가 담긴 듯 하죠.

열 받은 이령은 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머지 볼모들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본보기로 볼모를 죽인 뒤에 동맹의 수장들을 조지려고 한 거죠. 시라무렌은 갑자기 죽을 위기에 처하자 놀라운 처세를 발휘하는데요, ‘곤륜의 첩자들이 성에 득실댄다, 이령님이 계실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천제 얘기는 쏙 빼고 아첨을 떱니다. 자신이 간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여 곤륜이 쳐들어온 이유를 캐보겠다는 제안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죠.

시라무렌은 성의 병사들과 함께 간자 색출에 나서는데, 이상하게도 자기가 파악한 것 보다 그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여러 종족들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파악이 안 될 지경이었죠. 짐승들은 인간으로 둔갑하더라도 같은 짐승끼리는 진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는 설정이 있는데요, 명색이 간자들이니 이를 들키지 않을 방법은 다들 갖추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라무렌의 전방위적 색출이 시작되자 여기 저기서 들짐승 날짐승 뿔달린 짐승 가지각색의 종족이 정체를 드러냈고, 성 밖으로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도망가는 간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이령에게 정신지배 당한 흥개의 부족이 나섰는데요. 간자들도 나름 쎄 보이는 놈들인데 그들의 도끼질에 속절없이 썰려버립니다. 생포해서 데려가야 뭘 물어보든 캐보든 할텐데, 마구잡이로 죽이는 걸 보면 시라무렌이 몇 놈 잡긴 했겠죠? 아마 그들의 입에서 전쟁의 원인이 ‘압카’였음이 드러난다면, 이령은 압카의 존재를 더욱 무시할 수 없게 될 듯 합니다. 천제가 직접 강림했다는 것이 그의 존재를 더욱 확실히 증명하는 셈이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흰 산의 경계까지 간자들을 쫒아간 흥개 일족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는데요. 어떤 낯선 괴수 하나가 이마에서 노란 기공을 뿜는데, 하늘을 날아 도망가던 날개 달린 간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몸이 잘려 몰살당하고 있었죠. 저는 이 괴수의 실루엣에서 ‘추이’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요, 위 아래로 난 송곳니와 긴 꼬리가 마치 수인화 추이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의 기공은 흡사 ‘사자후’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몸이 잘려 공중에 흩어지는 간자들은 마치 추이의 사자후에 당해서 몰살당한 ‘흠원’의 모습과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전 화에서도 온통 검정색 피부를 한 수상한 놈이 하나 등장했었는데, 실루엣으로만 보면 동일 인물은 아닌 것 같아요. 머리털도 없고 전체적으로 매끈했던 데 비해, 오늘 등장한 추이닮은 괴수는 온 몸에 털 투성이입니다. 둘 다 흰 산의 부름을 받고 온 존재들로 보이고, 흰 산에 오자마자 전투 모드로 돌입해서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 괴수들의 정체는 다음 화에서 좀 더 자세하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한편 이령이 무덤에서 돌아오자, 완달 하나만 믿고 성으로 들어온 이르하는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양백이 말했던 그 악독한 놈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인데, 그녀와 압카를 지켜주던 흥개의 후손들마저 이령에게 정신지배를 당하는 동족과 싸우다가 전사한 듯 보이죠. 바닥에는 핏자국만이 흥건하고, 이령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압카가 있는 처소를 방문합니다.

처소 안에는 완달의 방어막이 둘러쳐져 있고 이르하가 압카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요. 이령이 드디어 압카와 처음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완달이 ‘너는 볼 자격이 없다‘라고 했었던 그 존재, 천제가 앞뒤 잴 것도 없이 전쟁을 결정하게끔 만든 존재, 앞으로 자신으로부터 흰 산의 힘을 빼앗아갈지도 모르는 그 존재를 직접 마주한 것이죠.

이령도 흰 산 일족이라면 압카의 영험함을 느끼긴 할 것 같아요. 대흥과 함화는 후계 결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덤을 뛰쳐나왔다가, 압카를 실물로 본 순간 모든 걸 인정하고 제 발로 다시 묻혔거든요. 완달은 압카를 보자마자 예언의 존재임을 눈치챘구요. 이들이 그렇게 느꼈을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이령도 그것을 느끼는 게 당연하겠죠. 다만 그 현실을 부정하고 역시나 자기가 영원히 왕이 되기 위해 압카를 죽일 것이냐, 예상 외로 언젠가 흰 산의 힘을 압카에게 전해줄 생각을 하고 잘 키우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 같습니다.